

청량한 하늘,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빛. 실상 코미나토 료스케가 그 하늘을 바라보는 건 야구를 연습하거나 시합에 나가는 경우가 전부였다. 이마저도 여름 하늘을 느끼기 위해 보는 게 아니라 공을 잡거나 보내려면 먼 곳을 볼 때도 있는 게 전부였을 뿐이었다. 그 사이 들어오는 푸른 하늘과 태양빛은 료스케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투 아웃, 투 아웃! 조금만 더 힘내자는 동료들의 목소리에 신경 쓰는 게 더 맞는 일이니까.
*
“료 선배, 자리에 있나요?”
“료 선배라면, 코미나토? 으음, 지금은 안 보이네.”
오오하라 유세이는 오늘도 3학년 교실 근처를 돌아다녔다. 그가 누군가를 찾기 위해 다른 학년의 층에 돌아다니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일로, 누구를 찾는지 또한 3학년의 대부분은 알고 있었다. 그야 교실에 얼굴만 내밀면 료 선배, 라는 호칭으로 누군가를 찾으니 모른 척 하려 해도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언젠가는 복도에서 크게 ‘료 선배~!’ 하면서 부른 탓에 상대가 무시하고 간 적도 있었으니, 그 일은 지금도 간혹 입에 오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세이도의 야구부는 이름 없는 야구부가 아니었다. 유세이가 야구부 소속 3학년들과 자주 어울린다는 건 금방 기억에 남기 마련이었다. 그가 야구부의 매니저였던가? 자세한 부분은 알기 어려웠으나 2학년인 오오하라 유세이는 3학년인 코미나토 료스케를 찾기 위해 하루에 여러 번이고 3학년 교실을 방문했다. 료스케는 쉬는 시간마다 자리에 있기도 하고, 친구들과 떠들거나 자리에 없는 일도 있었는데, 유세이는 이를 개의치 않고 매일 그를 보러 얼굴을 내미는 것이었다. 오늘도 역시, 료스케가 속한 반에서 그를 찾으면 뒤에서 누군가 유세이의 머리를 툭, 하고 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네 교실을 잊은 거야?”
“료 선배…!”
“아까도 왔었지? 할 말도 없으면서, 귀찮게 굴지 말아줄래?”
“선배~! 그치만요, 하루하루가 아까운 걸요!”
“뭐가 아까워?”
료스케는 습관처럼 손으로 유세이의 머리를 툭, 하고 쳤다. 이는 그에게 있어 나름대로 애정의 표현이기도 하였다. 별로 아프지도 않기에 유세이는 맞은 곳을 문지르며 수줍게 웃어보였다. 료스케를 보면 자연스럽게 짓는 웃음이었다. 수줍은 미소, 좋아하는 이를 볼 때 나오는 미소. 유세이는 그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료스케의 팔을 붙잡고 제 쪽으로 당겼고 료 선배, 하면서 짧게 떨어져있던 시간 동안 있었던 일을 길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듣던 료스케는 그래? 하면서 맞장구를 치기도 해 둘 사이에서 이뤄지는 대화에 어색함은 없었다. 오늘은 세이도가 고시엔을 향한 티켓을 놓친 지 일주일이 흐른 날이었다.
유세이는 세이도가 준결승에서 떨어진 날로부터 이틀이 지났을 때, 하루도 빠짐없이 료스케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첫날에 찾아가지 못했던 건, 그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 예상할 수 없는 탓이었고. 그 다음 날에 찾아가지 못한 건, 찾아가도 말을 걸지 못한 건, 붉어진 눈가를 차마 모른 척 할 수 없는 이유였다. 어렸을 적부터 알고 지낸 탓에 사실 따져보면 유세이는 료스케를 보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다만, 그가 하는 야구부 활동에 방해되지 않도록 야구 연습을 몰래 보는 게 전부였다. 그를 좋아하는 마음에 도쿄까지 따라왔다. 다른 학교도, 친구도 아닌 오로지 료스케만 보았고, 제 선택에 후회란 없었다. 료 선배가 원하는 것이라면 저도 바라게 된다. 세이도가 고시엔을 가고, 이를 따라 응원가는 길이 그가 고시엔을 가는 것만큼 제게도 바라던 일이었다. 그런 날이 올 거라고, 유세이는 세이도에 입학한 후 2년 동안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준결승 날, 유세이는 취주악부 자리에 서서 연주에만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의 동생인 하루이지만큼 료스케가 야구부 활동을 할 때마다 따라다니던 이였다. 야구에 대해 잘 몰라도 그의 플레이를 알고 있을 정도로. 그러니 료스케의 부상에 대해서도 모를수가 없었다. 료 선배가 저걸 놓칠리가 없는데, 하고. 어쩌면 기대감이 컸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실력과 노력을 안다는 자만감에 빠져서. 시합 하나하나가 지나가고 마지막 시합, 우승이라는 단어에 세이도가 없었을 때, 유세이는 알 수 있었다. 여름이 끝났다고. 세이도 야구부 3학년의, 코미나토 료스케의 여름이 끝났다고.
그리고 끝난 여름에서 느낀 감정을 저는 평생 알 수 없을 거라고.
“그래서, 제가~”
“…곧 종칠 시간이네. 가봐야 하지 않아?”
“헉, 벌써 그렇게 되었어요?!”
“늦지 않게 가야지.”
“저, 료 선배.”
“응?”
“오늘 시간 괜찮아요?”
“글쎄, 어떨까.”
“괜찮으시면 끝나자마자 올게요!”
그리 길지 않은 쉬는시간을 보내고 나면, 유세이는 종소리와 함께 빠른 걸음으로 교실로 향했다. 정작 상대가 괜찮다거나 무리라는 답을 듣기도 전에 옮긴 걸음이었다. 료스케는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본 후에 제 걸음을 옮긴다. 그들이 무엇을 겪었든 여름은 순조롭게 지나가고 있었다.
*
유세이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3학년 교실 근처로 뛰어갔다. 그가 저를 기다리지 않고 간 적은 없는데도, 하루가 지날수록 제 속이 타는 기분을 느꼈다. 그를 따라와서 후회한 적은 없다. 슬펐던 적도, 괴로웠던 적도. 하지만 딱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1살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그의 졸업을 지켜봐야 한다는 일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그가 졸업해도 중학교나 집 근처에서 볼 수 있다며 안심했었다. 중학생 때는, 따라가면 그만이라 여겼으니 그가 먼저 떠나는 일에 두려움을 느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러니 지금 드는 감정은, 막연한 느낌이었다. 3년 간, 야구에 시간을 보내며 그를 기다리기만 한 날. 모든 게 끝난 것만 같았던 여름. 가장 뜨거운 햇볕이 지나고 또다른 게 시작될 가을. 그래, 그 가을에 유세이는 료스케와 함께하고 싶었다.
“료 선배~!”
“생각보다 늦었어, 유세이.”
“많이 기다리셨어요!?”
“농담이야.”
장난스런 말이 들리면 유세이는 그를 따라 웃다가 손을 내밀었다. 기껏 해야 기숙사나 야구장까지 걷는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저는 더 이상 짧은 시간마저 놓칠 수 없게 된 일이었다. 료스케는 그 손을 바라보다 어쩔 수 없다는 웃음과 함께 손을 맞잡았다. 따지고 보면 이는 흔한 날이 아니었다. 그도 분명 오늘이, 평범하게 보냈던 어제가, 모든 하루를 예전처럼 흘러보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손을 잡은 채 학교를 나오고, 햇빛 아래를 걷기 시작했다. 아직 열기가 가지 못한 여름인데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한참을 걷다보면, 보이는 기숙사 건물에 유세이는 먼저 손을 놓고 그보다 앞서 걸었다. 그리고 숨을 고르더니 좀 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료스케를 바라보았다. 료스케는 그가 손을 놓았을 때쯤 이미 걷던 걸음을 멈춘 상태였다. 그러니까, 료스케는 오늘을 그저 흘러보낼 수 없다는 걸 알았고, 이는 유세이가 무슨 말이든 할 거란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과 다르지 않게 유세이는 그를 마주한 채로 입을 열었다.
“좋아해요.”
유세이가 료스케를 좋아한다는 건, 료스케 본인이 가장 잘 아는 이야기였다. 그는 제게 좋아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 이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뜨듯미지근한 바람과 함께 흑색의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짙은 흑색이 청량한 하늘과 대비하면서도,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면 모순일까.
“좋아해요, 료 선배.”
“…그래?”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지금 말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앞에 있는 이는 수줍은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료스케는 저 얼굴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저 얼굴을 마주하자 두근거리는 심장이 더위 때문에 느껴지는 감각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고백하려고 오늘은 조금 더 들뜬 모습이었나. 료스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제 곧 은퇴전이 있고, 이후에는 졸업이었다. 모든 게 끝났고, 또다시 시작될 시기가 다가온다. 상대에 대한 마음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고, 답할 대답도 정해져 있었다. 그러니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상대도 분명 알고 있는 답이었다. 료스케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그를 지나간다. 지나가는 사이 무어라 중얼거리는 말에 상대의 눈이 커지고 환한 웃음으로 바뀐다. 유세이는 큰소리로 긍정적인 답을 한 뒤 그를 따라갔다.
여전히 청량한 하늘 아래, 두 사람은 걸어간다. 여름이었다. 네가 나에게 고백을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