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 한 점 없이 햇빛이 쨍쨍한 7월 후반, 나무에 붙은 매미가 맴맴- 거리며 울고, 평소보다 더 더운 날씨. 그런 날씨와는 다르게 체육관에는 에어컨이 켜져 있어 시원한 공기와 함께 농구화가 내는 삐걱 소리와 농구공이 튕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이조 농구부는 지난 인터하이 때 베스트 8위라는 실적을 냈지만, 그 실적에 만족할 농구부가 아니었기 때문에 다음 윈터컵을 위해 합숙을 진행하기로 했다.
삑-
감독이 호루라기를 불자 농구부 부원들은 하고 있던 연습 경기를 그만두고선 모두 벤치로 가 매니저인 호시노가 준비해 둔, 이온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다. 합숙은 카나가와 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바다가 근처인 어느 한 시골이었다. 숙소도 체육관의 시설도 나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에어컨이 잘 나온다는 점에서 다들 합격점을 날렸다. 숙소 근처에 가게 같은 게 있어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 내기 할 때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만 급한 응급상황이나 무언가 떨어져 필요해진 상황에서는 기간이 긴 버스를 타거나 약 1시간의 거리를 걸어야 한다는 점에선 다들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게 짐을 잘 챙겨온 부원들이며, 밥 같은 경우에는 숙소에서 다 제공해주기 때문에 연습에만 집중하지만 생각했다. 키세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면서 벤치에 앉아 쉬고 있던 도중, 평소보다 더 바쁘게 움직이는 호시노를 유심히 바라본다. 평소에는 쉬는 시간마다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지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단정하게 묶었던 포니테일은 풀어지기 직전에 놓였으며, 에어컨이 틀어져 있어 시원한 공기인데도 불구하고 땀이 송글 맺힌 게 보일 정도였다. 계속 바라보고 있다 어느 순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라도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만히 서 있자 키세는 땀이 흘러진 부분을 수건으로 닦고선 바로 호시노에게 다가가 뒤에서 포옹한다.
“호싯치, 오늘따라 바빠 보이는데 무슨 일 생긴검까?”
“어? 료타. 다음날에 쓸 포카리스웨트 가루가 다 떨어져서. 합숙은 모레까지니까 감독님께 허락 맡아서 잠시 내려갔다 오려고.”
“혼자서 말임까?”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감독님도 바쁘고, 부원 중 한 명을 데려가기엔 다들 훈련에 집중해야 하니까.”
호시노의 말에 키세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다 뒤에서 포옹한 팔에 힘을 더욱 주었다. 호시노는 힘을 준 상태에서 이미 눈치를 챘기에 벗어나려고 했지만, 키세의 힘이 더욱 컸기에 벗어나지 못 한 체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료타…. 혼자 다녀오는 게 그렇게 위험하진 않아.”
“절대로 위험함다…. 하다못해 호싯치는 저와 같은 모델이지 않슴까? 오히려 시골이 더 위험할 수 있슴다. 안됌다, 절대로 안됌다.”
“아직 낮이니까 괜찮아. 금방 갔다 올게.”
“그래도 싫슴다…. 호싯치의 남자친구로서 절대로 허락 못함다.”
키세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호시노를 바라보고 있었고, 호시노는 그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고 있던 3학년 레귤러 멤버들이 다가갔다.
“키세, 호시노.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거냐.”
“아…. 카사마츠 선배. 아, 모리야마 선배랑 코보리 선배도 같이 오셨네요. 별거 아니에요.”
“선배들! 들어보십셔! 호싯치가 혼자 물품을 사러 나갔다 오겠다고 했슴다!”
3학년 레귤러들도 키세의 심정을 알겠는지 한숨을 쉬면서 호시노에게 혼자서는 가지 말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렇지만, 선배들도 그렇고 다른 부원들도 훈련에 집중해야 하잖아요. 감독님께서도 바쁘고요.”
“그럼 키세라도 데려가. 어차피 다음 훈련은 개인 훈련이니까.”
“에? 그렇지만 료타도….”
호시노는 말을 다 잇지 못 한 체 키세가 갔다 오겠다는 말과 함께 끌려나갔다. 그걸 본 3학년 레귤러들은 한숨을 쉬면서 주장인 카사마츠가 훈련을 재개하자고 외쳤다. 키세는 호시노를 끌고 가다가 멈추더니, 호시노가 묶고 있던 머리를 풀고선 손으로 머리카락을 정리해준 뒤 다시 묶어주고 있었다.
“내가 너 때문에 못살아….”
“자주 훈련하니까 괜찮슴다. 그리고 호싯치 진짜 여기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너무 그러지 마십셔. 무거운 짐 안 들어도 되고, 가는 길에 시원한 것도 먹고. 일석이조임다!”
해맑게 마지막 말을 끝내고선 손을 잡고 다시 정류장 쪽으로 이끌어갔다. 버스가 곧 오기 10분 전이기 때문이다. 이 버스를 놓치면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데 그 버스는 3시간 뒤에 오기 때문에 키세가 얼른 가자면서 호시노를 이끌어 갔다. 정류장에 도착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번호가 없는 마을버스에 타고선 둘은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아까까지 더웠던 바깥 날씨와는 다르게 버스는 에어컨을 틀고 있어서 꽤 시원했다. 버스 안에는 키세와 호시노 뿐. 둘이 있는 장면은 마치 힐링을 주제로 한 드라마나 영화에 나올 법한 장면처럼 보였다. 키세는 이어폰을 끼고선 휴대폰에 저장해 두었던 음악을 들으면서 창밖을 보았다. 호시노도 이어폰을 끼고선 노래를 듣지만, 어디서 내려야 할지부터 나간 김에 무엇을 더 사야 할지 등을 찾아보고 있었다. 서로 말없이 서로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현재 지내고 있는 숙소에서 꽤 먼 곳에 있는 소도시. 버스에서 차근차근 내려가자 아까 버스 안에서 느꼈던 시원함과는 다른 한여름의 더위가 그들을 반겨주었다. 둘 다 버스에 내려가자마자 동시에 “덥다!” , “덥슴다!”라고 말할 정도로 주변의 기온이 높았다. 둘은 이어폰을 빼 주머니 안에 넣었다. 그리고 목표였던 포카리스웨트 가루와 그 이외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기 위해서 손을 잡고선 근처 마트로 급하게 들어갔다. 버스에서 잔잔히 느끼던 시원함과는 다르게 2배에서 3배 정도의 시원함이 반겨주었다. 카트를 빼고선 나란히 마트 안을 돌아다니다 포카리스웨트 가루와 그 외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둘씩 담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담다 보니 어느새 카트 안을 다 꽉 채울 정도로 담았다. 계산은 감독님의 카드로 계산하기로 했지만, 너무 많이 산 것은 아닐까 하고 몇 개는 빼려고 했던 호시노 였지만 키세는 괜찮다고 하면서 나중에 사도 될 물건을 더 넣고선 계산을 했다. 느긋하게 물건을 사고 담고 했지만, 버스가 오기엔 아직 한참 남은 시간.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기엔 열사병으로 쓰러지기 딱 좋았기 때문에 버스가 올 때까지 오래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고, 근처에 작은 카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키세는 가득 짐이 담겨 있는 봉투를 들고선 카페로 천천히 걸어갔다.
“너무 무거우면 하나는 나한테 넘겨줘.”
“그렇게 안무거우니 걱정 마십셔. 카페까지 가깝기도 하고 호싯치한테 무거운 걸 들게 하고 싶지는 않슴다.”
마트에서 오래 있었지만 더운 날씨 때문인지 시원해졌던 몸은 다시 데워지면서, 덥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마트에서 조금만 벗어난 것이지만 땀을 조금씩 흐르기 시작했다. 짐 때문인지 아까 마트에 갔던 것처럼 빠르게 가지 못하고 천천히 걸어갔다. 작은 카페 안은 선선하게 시원했고, 주위는 고양이나 강아지 같은 무늬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고 아기 고양이가 의자에 앉아서 하품하고 있었다. 손님은 키세와 호시노 뿐이었지만 그 둘은 이 상황을 더 반긴다. 둘은 학생이지만 현재 모델로 활동 중인 연예인이다. 만일 모델인 것을 알아보면 주위가 시끄러워질 게 뻔해 한적한 카페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둘이었다. 앉을 곳 근처에 짐을 두고선 주문을 했다. 키세는 아이스 카페라떼, 호시노는 카페 한정 수제 청으로 만든 자몽에이드로. 선선히 시원한 공기와 시원한 음료 둘을 만족시키기 딱 좋았다.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고, 음료수를 천천히 마시다 보니 어느새 버스가 오기 30분 전 시간까지 왔다. 키세와 호시노는 자리를 정리하고 카페에서 나갔다. 아까보다 살짝 기온이 낮아진 게 느껴지자 더 더워지기 전에 버스 정류장까지 가자고 서로 말하더니 서둘러 버스정류장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나무로 만든 작은 정류장. 사람이 6명 정도 앉을 수 있을 정도의 기다란 의자와 칸막이가 있었다. 그 의자에 앉고선 둘은 멍하니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리던 중 키세는 호시노를 다시 한번 더 바라보았다. 한 번이라도 놓치기 싫은지 자신의 눈동자 안에 ‘호시노 이치카’를 가득 담았다. 그러던 도중 호시노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호시노는 무언가 닿았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바로 눈치채 얼굴이 전체적으로 붉어지다 고개를 돌려 키세를 바라보았다. 키세는 헤실거리며 웃더니만 호시노 만큼은 아니지만, 볼이 살짝 붉그스레진체로 입을 열었다.
“호싯치…. 키스해도 됨까?”
“...갑자기?”
“하고싶슴다…. 볼에 뽀뽀하니까 입술에도 뽀뽀하고 싶고 키스도 하고싶슴다. 하지만 허락 없이 하면 안 되는 거 알고 있슴다. 그러니까 호싯치한테 정식으로 허락 맡고 키스하고싶슴다…. 버스 올 때까지 만여…. 안되는검까?”
평소처럼 강아지 눈망울로 보는 것이 아닌 진지한 눈빛과 말투로 말하는 키세여서 그런지 호시노는 깊게 고민했다. 그러다 결론을 내렸는지 허락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키세는 기다렸다는 듯이 호시노의 입술에 천천히 맞대었다. 가만히 입을 맞대고만 있다가 입술을 조금씩 움직이면서 깊게 키스를 했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아까 버스 정류장에서 한 키스가 머릿속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 다 얼굴이 터지기 직전까지 붉어져 있었고 서로 얼굴을 옆으로 돌려 의식하지 않게 했지만, 손을 잡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까 탔던 버스처럼 시원한 공기가 가득했지만 둘의 얼굴은 시원한 공기가 닿지 않는지 식지를 않았다.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없었지만, 손은 놓지 않은 채 걸어갔다.
그들 머릿속에서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겨준 고등학교 1학년 어느 여름날 합숙이었다.